1666년 9월 2일 이른 시간에 토머스 패리너의 런던 빵집에서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동풍에 휩쓸린 불길은 브랜디, 와인, 기름으로 가득 찬 목재 지붕과 집을 집어삼켰다. 나흘 후 불길이 진화되었을 때, 500년 된 성 바울 성당을 포함하여 약 13,000개의 건물들이 파괴되었고 고대 도시 런던의 거의 80%가 소실되었다. 무려 10만 명이 집을 잃었다.
런던 박물관은 350주년을 기념하여 전시회 ‘불이야! 불이야!’를 열고 있다. 주위를 둘러싼 사건들과 사건이 도시의 미래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추적한다. 음향 효과, 애니메이션, 심지어는 노숙자들을 위한 임시 야영장까지 포함된 인터랙티브 쇼에서 역사적인 물건과 기록물들을 선보인다. (런던은 다른 방면으로도 이 사건을 주목했다.: 거리를 따라 불길이 도미노 같이 번지고, 마을의 잔해가 전시되어있다,)
화재는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고, 100년이 지나도 유럽 전역에선 여전히 불길을 그린 판화가 인기다. "유럽의 많은 다른 도시들은 화재와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었지만, 18세기에 이르러 런던은 유럽에서 단연코 가장 큰 도시가 되어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런던 박물관의 역사 수집 책임자인 알렉스 베르너는 말했다.
그 화재는 건설적인 결과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결과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런던은 새로운 성으로 재건되었다.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폴 대성당은 그 중심부에 있으며, 베르너씨는 이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상징"이라고 불렀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에 맞서기 보다는 도망친 덕에 화재로 사망한 사람은 열 명 미만이었다. 또한 설령 도망치지 않았다 해도 별 차이가 없었을 거라고 전시회 큐레이터인 메리엘 제이터는 말했다. 17세기 소방은 양동이, 손으로 펌프질한 소방차, 그리고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들을 내려오는데 사용된 커다란 갈고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 다른 파트에서는 애니메이션 맵이 피해 규모를 알려준다. 불길은 아래 모퉁이에서 검은 덩어리처럼 번져 결국 430에이커 면적을 뒤덮는다.
무명의 화가가 그린 1675년 그림은 활활 타오르는 도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가족과 함께 도망친 우체국 직원의 편지를 읽기도 하고 들을 수도 있다. 그는 "불은 무한한 지혜 속에 있는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파멸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적으며 "당신의 슬픈 친구"라고 이름을 적었다.
다른 유물들은 그 화재의 추가 증거를 제공한다. 비트린에 검게 그을린 덩어리는 녹은 세라믹 기와(푸딩 레인 및 주변 지역에서 제외)의 그을리고 뒤틀린 모습을 드러낸다. 엑스레이 조명은 녹슨 열쇠, 칼, 와플 다리미를 포함한 다른 숯덩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준다.
그 도시의 고고학적 발굴이 화재의 증거를 계속 밝혀내고 있다. 예를 들어 푸딩 레인의 1979년 발굴조사에서 붕괴된 건물들의 파편이 있는 지하실을 발견했다.
"런던시티의 많은 유적지에서 여러분은 이 화재 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미터 정도의 깊이에, 뒤틀리고, 녹은 물체들로 가득 차 있는 층입니다,"라고 제이터는 말했다.
1600년대 중반의 반쯤 완성된 자수, 페이지 가장자리에 불 흔적이 있는 1608년 성서, 한쪽 구석이 타버린 펜 상자 등 다른 물품들도 불길 바로 앞에서 구조됐다.
노숙자들을 위한 대피소인 턴트 지역은 그 재난의 규모를 알린다. 개개인의 이야기도 그렇다. 불이 나기 전, 유복했던 한 여성이 주 시장에게 구걸하며 편지를 쓴다. 그녀는 자신과 다섯 명의 자녀들이 앉을 만한 곳이 없다고 쓰여있다.
마지막은 화재의 여파에 초점을 맞춘다. 런던 부흥의 이유인 디자인이 수록되어 있다. 넓은 대로와 크고 개방된 광장, 화재 후 런던의 거리 표지판, 그리고 재건 노력 중 재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특별 법정에서 사용된 1660년대 표 등이 있다.
3년 반 전 런던이 입은 피해는 제2차 세계 대전에 번진 화재만이 겨룰 수 있었다.
워너씨는 "피해가 훨씬 심각했다"고 말했다. "불길은 훨씬 더 널리 퍼져 있었어요. 런던은 훨씬 더 큰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세인트폴만은 살아남았는데, 17세기 이후 소방이 발전한 것이 적잖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지붕 위에 소방관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세인트폴에 폭탄이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지붕에 불이 붙지 않았다.
기타 대형 화재
로마
서기 64년 7월의 어느 찌는 듯한 저녁, 로마의 팔라틴 근처 상점에 갑자기 불이 났다. 바람에 휩싸인 불길은 도시 전역에 번져 사실상 그 길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6일 후 마침내 잠잠해지자 도시의 3분의 2가 폐허가 되었다. 오랫동안 불길을 지켜보며 심지어 지휘까지 했다 믿었던 네로 황제는 사실 당시 로마를 떠나 안티움(지금은 안지오)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있었다. 그의 궁전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시카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재는 1871년 10월 8일 웨스트사이드의 헛간에서 시작되었다. 강풍과 지연된 소방 장비는 사람이 많은의 빈민가와 그들의 주로 목조 가옥이 불타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을 초래했다. 불은 10월 10일 아침까지 계속되었고, 그 때 강우량, 호수로 인해 진화되었다. 약 300명이 사망했고 도시의 약 3분의 1이 파괴되었다.
도쿄
1923년 9월 1일 정오 직전, 가족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을 때 리히터 규모 8.2의 지진이 일본의 수도를 강타했다. 이어진 참화는 일본 가정집 내부에서 난로가 뒤집히고 거센 바람이 불길에 부채질을 하면서 시작된 화재는 지진보다 더 심각했다. 사망자 수는 13만 명에 육박했고 도쿄 인구의 거의 3분의 2가 집을 잃었다.
출처 | New York Times
원글 | https://www.nytimes.com/2016/08/10/arts/international/the-great-fire-and-the-rebirth-of-london.html
에디터 | 송도예
스케치북 바로가기 | http://mysketchbook.co.kr/bbs/board.php?bo_table=gallery01&wr_id=299&&stx=%ED%95%B4%EC%99%B8&sop=and&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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