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유명한 테크노 클럽이 팬데믹 기간 동안 전시 공간으로 용도 변경되었다. 1990년대 황금기를 연상케 하는 클럽 문화와 시각예술이 어우러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90년대 초, 예술가와 D.J.들은 전람회와 라이브를 개최하기 위해 이런 무법지대 거리에 내려섰다. 적어도 무척 진부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곳의 ”예술“은 DIY가 아니라 부동산 개발과 대기업에 관한 것 뿐이었고, 도시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이슈는 고급화된 예술가와 클럽의 유출이었다.
그것이 팬데믹(*WHO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전의 일이었다.
독일이 3월에 폐쇄되었을 때, 유명한 테크노 클럽 베르하인 또한 베를린의 다른 나이트클럽과 극장들을 따라 문을 닫았다. 엄선된 바운서들을 통과하길 바라는 긴 대기줄은 테크노와 라이팅 바디가 있는 아르카디아와 함께 사라졌다. 베를린의 시각 예술가들은 스튜디오에 자리를 잡았다. 그 도시의 문화적 고동은 점점 둔해지기 시작했다.
6월까지, 일부 박물관과 미술관은 제한적으로 문을 열었지만, 나이트클럽의 문은 여전히 닫혀있다. 베르헤인의 숨겨진 주인인 마이클 튜펠과 노르베르트 토르만은 저명한 수집가 크리스찬과 카렌 보로스에게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클럽 내 지역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회와 협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모두가 장난으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9월 9일 개봉하여 12월까지 상영되는 "Studio Berlin"은 어쩌면 대유행의 전개 방식에 따라 예술이 만들어지는 쇼다. 보로스와 큐레이터 줄리엣 코테는 베를린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후 베를린에 거주하고 활동하는 115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3월부터 제작되었다.
쇼는 광대한 클럽을 가득 메우고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토요일 개막하는 6월에 연기된 국제 전시회인 Berlin Biennial보다 더 많은 예술가들이 이 쇼에 참가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최신 작품들 가운데, 'Studio Berlin‘은 지금과 여기에 존재하지만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불확실성과 희망을 동시에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건물 외관에는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의 현수막인 “Morgen ist die Frage” (“Tomorrow is the Question”)가 정면 상단에 가로놓여 있고, 입구 근처 외관에는 더크 벨 조각이 세워져 있으며, 두꺼운 강철봉에는 사랑이라는 글자가 맞물려있다.
문 앞에 바운서가 없는 상태, 방문객들은 로비에 들어가 즉시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뉴욕 타임즈를 포함해 클럽의 사진 찍지 않는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그 후 그들은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바다 부표를 만나게 된다. 독일 예술가 줄리어스 폰 비스마르크의 "Die Mimik der Tethys" 부표는 우주 공간을 위아래로 쓸어내린다. 센서를 통해 실제 바다의 움직임을 그대로 쫓으며, 크고, 어쩌면 예측할 수 없는 쇼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1990년대 이후 베를린의 예술이 얼마나 국제화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아트도 있다. 플로어의 유명한 사운드 음악은 나이지리아 아티스트 Emeka Ogboh의 음악으로 한껏 들떠 있다. 높은 벽에는 시리아 예술가 칼레드 바라케가 만든 시계가 있다. 시계추는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아마도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세고 있을 것이다.
2층의 파노라마 바에는 평소 음악이 잘 흐르지 않기 때문에 더 섬세하고 고요한 아트가 전시된다. 방 위에 우산처럼 걸려 있는 것은 페트리트 할릴라즈와 알바로 우르바노(동아리에서 10여년 전에 만난 부부)의 오커다란 꽃 조각상이다. 심하게 문신을 새긴 베르하인 바운서 스벤 마르콰르트의 비디오에는 조용한 가정의 모슴을 담았다. 케투타 알렉시-메스키쉬빌리 역시 매일같이 산 꽃들을 묘사한 폴라로이드 시리즈를 선보인다.
다른 작품들은 베르하인 자체를 가리킨다. "Cockaign의 땅"이라고 불리는 키프로센 길라드의 작은 스테인리스강 판화는 화장실 칸의 광택이 나는 금속과 조화를 이룬다. 바닥에 검은 옻칠을 한 것은 미국인 예술가 크리스틴 선킴의 작품으로, 청각장애인인 그녀가 클럽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터키 화가 네빈 알라다그의 텍스쳐 조각상은 금속판에 거칠게 두드려 박은 움푹 패인 자국들의 연속이다. 그는 신고 춤을 춰서 그 자국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독일의 예술가 베레나 이셀은 어두운 통로를 정글과 같은 설치물로 바꿔놓았는데, 마치 야자수와 정글 식물처럼 보이게 만든 빗자루, 와인병, 플라스틱 칵테일 안경, 붓 등 일상의 물건들이 관람객들을 에워싼다.
예술은 클럽의 구석, 복도, 계단 등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스튜디오 베를린"은 특별한 행사만을 위해 열리는 광활한 공간으로 경외감이 느껴진다. 내부는 두 층으로 올라푸르 엘리아손, A.A. 브론슨, 안젤라 불로치, 아두그나 에티차처럼 등 베를린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술가들과 사진가들의 작품이 있다.
그것은 또한 과거 발전소, 클럽, 그리고 전시공간이었던 월베를린의 혁신적인 재이용 역사를 선명하게 떠올리게 한다. 최선의 경우, 재이용은 일시적이든 아니든 예술과 음악 장면의 공동체 정신을 반영한다. 홀에 서자, 지금은 철거를 위해 비워진, 2005년 구 동독 의회 건물인 팔라스 데어 레퓌블리크에서 즉석에서 상연된 "36 x 27 x 10"이라는 유명한 쇼가 생각났다.
당시만 해도 예술가들이 건물을 점거한 것은 대담한 행동이었고, 역시 정치적 행위였다. 그들은 역동적인 지역 현대 예술 공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 정부에 납득시키고 싶었다. 팰러스트 데어 레퍼블릭은 오래 전에 철거되었지만, “36 x 27 x 10“의 일부 예술가는 여전히 주변에 거주하고 있고, 엘리아손, 미스터 벨, 모니카 본비키니, 타키타 딘처럼 'Studio Berlin‘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Studio Berlin‘은 혼란스럽고 유기적이며, 몇몇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곳은 날카로운 큐레이터들이 진술을 하는 쇼가 아니다. 이 도시의 문화 유산인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축하하는 것이다.
이런 자산들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베를린 시는 25만 유로(약 29만5000달러)를 기부하고 있으며 보로스 재단도 출연료를 내고 있다. 나이트라이프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Studio Berlin‘은 전시를 새로운 대중에게 재개봉하고, 오랜 시간을 허송세월했던 클럽 직원 몇 명을 다시 직장에 복귀시킬 것이다.(전시 가이드로 활동하게 될 거다.)
'Studio Berlin‘은 불안한 시기에서도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데, 바로 그때 베를린의 문화가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클럽 문화와 예술은 1990년대의 황금기와 비슷하나, 이번에는 모든 것이 훨씬 더 크고 비용도 상당할 것이다.
출처 | New York Times
원글 | https://www.nytimes.com/2014/12/19/arts/design/robert-motherwell-works-on-paper-1951-1991.html
에디터 | 송도예
스케치북 바로가기 | mysketchbook.co.kr/bbs/board.php?bo_table=gallery01&wr_id=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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