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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계 뉴스

유명 재킷 디자이너 게리 버덴, 84세로 사망

by mysketchbook 2020. 10. 21.

1975년 캘리포니아 주 말리부비치에서 닐 영과 함께한 게리 버덴.

 

1960년대 후반부터 닐 영, 조니 미첼, 더 도어스 그리고 록과 포크록을 연주하는 수많은 스타들을 위해 기념 재킷을 디자인한 게리 버덴이 3월 7일, 로스엔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였다.

 

그의 아내이자 협력자인 제니스 허가 사망을 확인했다. 사망 사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프레디지털 시절 음악은 주로 레코드로 판매되었는데, 아티스트들은 종종 개인 앨범을 내서 대중들에게 각인됐지만 버덴은 앨범 커버를 만들며 팬들에게 알려졌다.

 

그는 1969년 처음으로 크로스비, 스틸스 & 나시의 재킷을 디자인했고, 누더기 소파에 앉은 세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1971년 호평받은 미첼의 앨범 "Blue" 재킷도 디자인했었는데, 블루와 블랙 톤의 가수를 두드러지게 클로즈업한 디자인이었다. 또한 "Desperado"를 위해 이글스를 와일드 웨스트 레갈리아에, "On the Beach"(1974년) 디자인을 위해 치즈색 노란 재킷을 영에게 입혔다. 그의 가장 최근 작품으로는 지난해 개봉한 코너 오버스트의 'Salutations'가 있다.

 

2015년 NPR의 'World Cafe'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버덴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했다. 그는 말했다. "음악을 시각화하는 것, 그게 제 임무예요.“

 

'The Papas & The Mamas'(1968)의 디자인 표지 디자인은 그의 커리어를 바꿔놓았다. "Crosby, Stills & Nash"(1969년)의 자켓으로는 자주 출연하는 헨리 딜츠의 사진을 사용했다.

 

버덴에게 오베르스트는 고마운 수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e메일로 말했다. "게리의 자켓은 음악 정신과 아티스트들의 소망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어 했어요. 그와 아티스트가 원하던 요소를 없애고 비용을 절감하려 하는 음반사와 종종 갈등을 빚었죠. 게리는 대개 그런 전투에서 승리했지만요."

 

버덴은 1933년 5월 23일 클리블랜드에서 로웰과 아가사 짐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부 플로리다에서 자랐고, 한시도 가만히 있는 때가 없었다.

 

그는 "무척 보수적인 집안이었죠. 도저히 맞지를 않았어요. 왜 내가 그 집 아들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보수주의로부터의 탈출은 예사롭지 않았다. 16세 때 어머니에게 나이를 속여달라 설득한 그는 해병대에 입대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예배를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한동안 비트닉(*현대사회를 부정하는 방랑자적인 문학 예술가 세대를 이르는 말.) 생활을 하다가 결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건축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다. 그 후 1960년, 그의 직업을 바꾼 사람은 The Papas & The Mamas의 캐스 엘리엇이었다.

 

그는 많은 음악가가 정착하고 있는 LA 구역을 언급하며 말했다. "그녀는 로렐 캐니언에 있는 자신의 집을 리모델링해 달라고 했어요. '게리, 우리 새 앨범 재킷을 만들어봐.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했죠.“

 

버덴은 영의 'On the Beach'(1974년) 재킷 디자인을 위해 영에게 값싼 폴리에스테르 옷을 입혔고, 'Crazy Horse'표지 사진을 찍을 때는 말에게 물린 뻔했다.

 

그는 마침내 1968년 앨범 "The Papas & the Mamas"를 디자인했다.

 

그는 말했다. "정장 세 벌을 벗어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진짜 내가 새로 태어났을 때였어요. 그 전에 나는 내가 누구여야 하나 생각하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요."

 

The Papas & the Mamas는 던힐 레이블에 올랐고, 버덴은 스테펜울프나 스리독 나이트 같은 다른 던힐 그룹의 디자인 업무를 받았다. 엘리엇을 통해 로렐 캐년 안팎에 살고 있는 수많은 다른 연주자들과도 만났는데, 이 연주자들은 영의 단골손님이자 버덴의 협력자가 되었다.

 

버덴은 영을 위해 40장 이상의 앨범을 디자인했고, 1970년에 "After the Gold Rush" 이후로도 여러 디자인에 참여했다. 영이 첫 그래미상을 수상한 2010년 1월, 그것은 그의 음악 때문이 아니라 닐 영 아카이브스 Vol.1의 베스트 박스, 그리고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 패키지 때문이었다.

 

2015년 캐나다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버덴은 영의 "on the beach" 커버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보기보다 모든 것이 싸보였던 70년대 미국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표지는 해변 풍경 사진인데, 캐딜락 조각이 노란 해변 가구 옆 모래에 박혀 있고, 영은 뒤에서 카메라와 등을 맞대고 있다.

 

조니 미첼의 인상적이고 침울한 클로즈업이 "블루"(1971)의 커버를 장식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모리슨 호텔에 서 있는 짐 모리슨과 더 도어스의 사진을 사용하여 1970년 앨범을 디자인했다.

 

"닐과 함께 값싼 폴리에스테르 옷을 파는 가게에 가서 자켓과 바지를 샀어요.” 그가 말했다.

 

영과 함께 자주 공연해 온 밴드 크레이지 호스는 1971년에 단순히 "크레이지 호스"라는 제목의 앨범을 발매했는데, 일그러진 말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그는 C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말이 너무 무서워서 사진을 직접 찍은 적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단 하나 찍은 게 있는데. 말이 저를 물려고 했을 때였죠, 후에 그 사진을 늘려 합성했는데 무척 이상해 보였습니다."

 

버덴은 딜츠와 팀을 이뤄 좀 더 많은 재킷을 디자인했다. 한 업무는 LA의 모리슨 호텔의 밴드가 피처링한 더 도어스의 1970년 앨범 'Morrison Hotel'이었다. 프런트 데스크의 매니저는 호텔 내부에서 사진 찍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사진을 찍다 보니 매니저가 자리를 떴고, 우리는 달려나갔습니다.“

 

1970년 그가 영을 위해 디자인한 첫 앨범 "After the Gold Rush“

 

밖에 있던 딜츠는 앞 창문 바로 안쪽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밴드 멤버들의 사진을 찍었다.

 

최초의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의 앨범 커버는 딜츠가 촬영한 것으로 당시 가장 유명한 록 이미지 중 하나이다. 이 이미지는 그래햄 내쉬, 스티븐 스틸스, 데이비드 크로스비가 똑같이 낡아빠진 집 앞 구타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버덴은 이 그룹이 너무 새로워서 사진을 찍을 때 이름을 짓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단 밴드의 이름이 정해지면, "오케이, 우리는 그냥 내일 돌아가서 재촬영을 하자. 순서대로 앉아도 좋아," '월드 카페' 인터뷰에서 바덴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자, 집이 있던 공터만이 남아있었다.

 

그는 말했다. "뒤편에는 나무와 건축자재가 쌓여 있었어요. 그냥 불도저로 싹 밀어버린 거죠. 하느님이 내린 시련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버덴의 유족으로는 아내와 딸 아만다 짐, 아들 셋, 제시, 브레톤, 팀, 손자 셋이 있었다.

 

CD와 디지털 다운로드의 등장은 버덴의 재킷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음악 업계가 변하면서 새로운 형식과 기술에 적응했지만, LP판을 디자인 하는 것, 그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거였어요. 판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 좋았고, 조인트 감는 것도 좋았고요." 오버스트가 말했다.

 

 

출처 | New York Times 

원글 | https://www.nytimes.com/2018/03/16/obituaries/gary-burden-designer-of-famous-album-covers-dies-at-84.html

에디터 | 송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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